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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득찬

 

 

처음부터 그랬다.

태어나면서부터 영 틀려버렸다.


사랑하는 가족이란 그럴싸한 수식어를 가진 그 중요한 가족에게도 환영받지 못했던 나는

다음에 혹시 태어날지 모르는 남자아이인지 여자아이인지 모를 아직 생기지도 않은
묘령의 아기를 위해 남자 이름을 가져야 했다.


많이 들어봤다.

딸만 있는 집에 막내에게 남자 이름을 지어주면 다음엔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기괴하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어른들의 입담 때문에 내 이름은 남자 이름이 되어버렸다.


‘가 득 찬’

 

눈치 없는 어른들은

‘득찬아 밥 먹어라’

‘득찬아 공부해야지’

‘가득찬 배가 가득찼냐? 크크..킥...’

 

이렇게 내 이름을 풀버젼으로 불러대며 놀려대기까지 했었다.
지연, 소영, 지혜, 미영 등 본인들은 그 이름이 흔하고 촌스럽다고 난리를 치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었다.

 

‘아! 차라리 촌스러워도 그런 이름이고 싶다. 휴~’

 

첫째언니는 희진

둘째언니는 희수

셋째언니는 희영

넷째언니는 희라

 

내 이름은 ‘득찬’...

우리 집에 대해서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딸만 다섯인 집에 딸들의 이름을
조용히 읊어 내리다가 내 이름을 들으면 두 가지 대답을 할 것이다.

 

‘아! 결국 다섯 번째는 성공을 하셨군요?’ 또는
‘아! 막내도 딸이라서 혹시 다음은 꼭 아들이길 바라셔서 이름을 이렇게 지으셨나보네요?’

 

뭐...전자건 후자건 도대체 알 수 없는 건...아니 난 알고있지만...
이름만 듣고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 못하는 모르는 사람들의 괜한 말들이 그때는 상처가 됬었다.

딸만 낳은 우리엄마의 고충이나 할머니의 말도 안되는 한숨이나..
그래서 모두 죄인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 정말 싫었던 것 같다.
 

이름 때문이었을까?

신기하게도 어릴 때부터 여자아이들이 하는 놀이에 즐거움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매일 하루가 멀다하고 동네에 있는 남자아이들과 어울려 노느라 집에 들어올 때쯤이 되면
코 밑은 새까맣게 변해있었고 한낮의 작렬하는 태양빛을 받아서인지
피부는 항상 까맣게 그을려있었다.


어릴 때 사진을 뒤져보니 그만할 때 여자아이들이 많이 입는
그 흔한 원피스 입은 사진이 한 장도 없고
긴 머리를 예쁜 핀이나 방울로 묶은 사진도 없고, 생글거리며 웃는 사진 한 장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 때의 내 얼굴은 내 자신이 보기 민망 할 정도로 불만이 가득 찬 상태였다.
이름 때문이었을까?

 

언니들하고 어울려 놀거나 동네 친구들과 놀 때에도 내 정체성과 존재감은 두 개의 얽힌 실타래처럼 
원인모를 열등감과 소외감으로  내 마음속에 크게 자리잡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가끔 나를 위로한다고 한마디를 하시곤 했다.

 

‘찬아 그래도 너만 나랑 같은 돌림자를 쓰는구나..허허’

 

아버지는 늘 자상하게 말씀을 많이 하는 분은 아니었지만
막내의 열등감과 소외감이 이름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 같다.

 

‘가득찬’은 뭔가 꽉찬 느낌의 이름인데...
원래의 뜻도 그런 뜻일텐데...
많은 이유들 때문에 내 마음은 항상 비어있어 외롭고 쓸쓸했다.

가득찬
# by 가득찬 | 2008/10/10 07:45 | ◎ 긴 끄적거리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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